약 두 달 전에 모 배급사의 요청으로 인해 다수의 작품이 블라인드 처리가 됐고, 자막 제작 활동을 중단함과 동시에 그동안의 작업물은 다른 방식으로 살려 두는 것으로 결정한 바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온라인상의 활동과는 무관한 불미스러운 일로 정신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크게 좋지 않은 상황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일로 하반기 예약해 놓은 상품들도 싹 취소했고, 내년 겨울 여행 계획도 완전히 휴지 조각이 되어 버렸네요. 이런 상황에서 추후 조금이라도 안 좋게 작용할 만한 요소는 모두 없애 두고자 판단하여 지금까지 남겨 뒀던 자막도 모두 내리는 방향으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 활동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도 그랬지만, 문득 작업하던 때가 떠오르더군요. 처음에는 단순히 코믹스 번역 쪽에서 스퀘어 에닉스 관련으로 흉흉한 소문이 돌아서 피신(?)한다고 온 게 애니메이션 자막 쪽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남들이 작업하지 않는 작품을 위주로 작업했습니다. 제가 보는 작품 중에 자막이 없어서 못 보는 사람이 생기는 작품은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입대를 할 무렵에는 정말 자막 그 자체에 빠져서 별 이상한 효과도 만들어 보고, 그냥 무작정 빠르게 만들어 보기도 하면서 smi 자막으로 할 수 있는 이런저런 것들을 하며 지내다가 결국은 군에 들어가서까지 자막을 만드는 기행을 보이기도 했고, 그리고 이 활동을 그만두기 2년 전부터는 정말 마음에 들었던 작품들을 작업하면서 조금이라도 해당 작품에 긍정적인 영향이 가길 생각하며 작업했던 것 같습니다. 그게 BD/DVD 구입이든 원작 구입이든 관련 굿즈 구입이든 그러한 소비로 이어졌으면 했던 게 최종적인 바람이었습니다.

  뒤돌아보면 참 재밌는 작품도 많았고, 작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도 굉장히 많더군요. 남들은 이런 활동은 아무런 이득도 없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의 활동에 조금의 후회도 없습니다. 단순한 감상만으로는 느끼지 못했을 여러 감정이나, 나름대로 심도 있게 작품을 번역자의 입장에서 다시 가공한다는 뿌듯함도 있었습니다.

  어쩐지 혼자서 후련하게 털고 나오는 게 아니고 계속해서 불미스러운 일이 계기가 되어 이런 글을 쓰고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는 게 많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다시 출발해야지 싶네요. 언젠가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돌아올 날이 온다면 좋겠네요.

Posted by 불량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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