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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막/청춘 돼지는 란도셀 걸의 꿈을 꾸지 않는다

청춘 돼지는 스프링데이즈의 꿈을 꾼다 번역

by 불량기념물 2023. 12. 14.

 

청춘 돼지는 란도셀 걸의 꿈을 꾸지 않는다(극장판 제3편)의 1주차 관람객 특전 소설

 

청춘 돼지는 스프링데이즈의 꿈을 꾼다

(青春ブタ野郎はスプリングデイズの夢を見る)

 

 

 

1

그날, 아즈사가와 사쿠타는 증명사진을 찍으러 와 있었다.
단, 자신의 사진이 아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어하는 여동생인 카에데를 따라 온 것이다.
장소는 후지사와역의 북쪽 출구에 있는 빅카메라 3층. 카메라 매장의 한 구석.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인쇄해 주는 단말 옆에 증명사진용의 한층 더 큰 기계가 놓여 있었다. 촬영에서 인쇄까지 직접 할 수 있는 우수한 기계다. 역 앞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계지만, 야외에서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게 신경이 쓰인다는 이유에서 카에데가 직접 검색해서 찾은 숨겨진 장소였다.
옆의 카메라 매장에도 지금은 사람이 드문드문 있을 뿐이다. 사쿠타 일행을 신경 쓰는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촬영 버튼을 누르면 3초 후에 촬영합니다."
닫힌 차광 커튼 너머로부터 음성 안내가 들려 온다.
동시에 카에데의 긴장감이 안쪽에서부터 전해졌다.
"3, 2, 1……"
음성 안내의 카운트다운이 끝나자마자 플래시가 터지고 촬영은 한순간에 끝난다.
"다시 한 번 더 찍을까요?"
그 질문이 나오고 커튼이 열리며,
"어떡하지, 오빠?"
라고 곤란한 표정의 카에데가 앉은 채 올려다 본다.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찍으면 되잖아?"
적어도 카에데의 표정은 만족하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그다지 잘 찍히지 않은 것일 테다.
사쿠타가 안쪽의 확인 화면을 들여다보니 방금 막 찍힌 사진이 표시되어 있었다.
어떻게 보더라도 딱딱하게 긴장된 얼굴이다.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으려다 보니 반대로 뺨이 굳어 있었다.
"조금 표정이 딱딱한 것 같기도 하네~"
그렇게 말한 건 사쿠타의 앞을 비집고 안쪽을 들여다 본 노도카였다. 덕분에 사쿠타의 시야는 노도카의 금발에 의해 막혀 버렸고, 조금 좋은 냄새가 났다.
"다시 찍을 수 있다면 다시 찍어 보는 게 어때?"
뒤이어 올바른 조언을 한 것은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마이였다. 둘 다 카에데가 증명사진을 찍는다고 했더니 쇼핑 겸 따라온 것이다.
"다시 촬영하려면 촬영 버튼을 눌러 주세요."
"그럼 해 볼게."
사쿠타에게 그렇게 말하고 카에데가 버튼에 손을 뻗었다.
"카에데 쨩, 차분하게 해."
그렇게 말을 걸고, 노도카가 커튼을 휙 쳤다.

3분 후, 완성된 사진을 손에 든 카에데의 반응은 침묵 그 자체였다.
"……."
입을 삐죽 내민 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 눈이 바라보는 건 아까랑 똑같은 표정을 지은 증명사진 속의 자신.
"아이 참."
이라며 카에데가 탄식 섞인 소리를 냈다.
마음에 들지 않다는 건 분명해 보였다.
"증명사진은 누가 찍어도 대체로 그렇게 된다고? 게다가 아르바이트 면접은 이력서를 지참하고서 하니까 서류 때문에 떨어지거나 하는 일도 없고. 어디까지나 본인 확인이니까 안심해."
어쩐지 불안해 보이는 카에데에게 일단 격려를 해 놓는다.
"이 기계가 별로인 거 아니야?"
노도카가 실례되는 말을 하고서는 증명사진 기계를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째려본다.
"그럼 노도카도 찍어 보는 게 어때?"
"응, 그럴게."
농담으로 해 본 소리였지만, 노도카의 모습은 이미 커튼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음성 안내를 잇따라 생략하고 "3, 2, 1……"이라는 카운트다운 이후 플래시가 터졌다.

3분 후, 사진 출구에서는 시원찮은 얼굴을 한 노도카의 사진이 나왔다.
"불상사를 일으키고 은퇴한 아이돌 같네."
"일으키지도 않았고, 난 현역이야!"
"노도카 언니도 예쁘게 찍히지 않는다면, 난 그냥 이걸로 해도 될 것 같아."
분개하는 노도카와 달리 카에데는 혼자서 수긍하고 있다.
"아냐 아냐, 카에데 쨩은 분명히 훨씬 더 귀엽게 찍힐 거야!"
반대로 노도카는 묘한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역시 이 기계가 별로인 거라니까."
그리고 또 다시 실례되는 말을 한다. 새것 같은 증명사진 기계는 보기에는 최신 기종이다. 오히려 이게 가장 예쁘게 찍히지 않을까.
"그럼, 마이 씨가 시험해 보면 되지 않을까?"
모두가 아는 국민적인 지명도의 여배우.
이 이상의 피사체는 없다.
사쿠타의 발언을 듣고 노도카와 카에데의 시선이 마이를 향한다. 그야말로 기대 어린 시선이었다.
"언니, 부탁할게! 언니가 예쁘게 찍힌다면 단념할 수 있으니까."
옆에서는 카에데가 말 없이 "응, 응."하고 끄덕였다.
"얘들도 참, 알겠어."
마이는 모자랑 도수 없는 안경을 벗고 그걸 사쿠타한테 맡겼다. 머리를 조금 정돈하고, 그다지 내키지 않는 듯한 모습으로 의자에 앉았다.
"카에데랑 토요하마한테 현실을 알려 주세요."
"평범하게 찍을 거야."
마이의 대답을 듣고 나서 커튼은 바깥에서 사쿠타가 조용히 닫았다.

3분 후 완성된 마이의 증명사진을 보고, 사쿠타와 카에데와 노도카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
"……."
"……."
결과물이 미묘했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파란 배경을 쓴 수수한 증명사진일 텐데, 거기엔 연예인 '사쿠라지마 마이'가 당당하게 찍혀 있었다.
자연스럽게 풀어 헤친 머리카락. 입꼬리를 자연스럽게 올린 태연한 얼굴. 눈은 또렷하게 뜨고, 늠름한 인상 속에 부드러움을 품은 걸출한 미인이 찍혀 있다.
"이거는 바로 채용이지."
이력서의 내용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을 듯하다.
"마이 언니는 역시 엄청 예뻐……."
카에데가 감탄 섞인 말을 한다.
"토요하마, 기계에 사과하는 게 좋겠는걸."
"납득할 수 없~어!"
"인물의 차이지."
"확실하게 못박지 마!"
진실을 전하니, 노도카가 진심으로 으르렁거렸다.
"그나저나 이왕이면 사쿠타도 찍어 봐."
증명사진 기계를 노도카가 가리킨다.
"이거 게임장에 있는 그게 아니잖아……."
불평을 하면서도 사쿠타는 얌전히 따르기로 했다. 마이와 카에데의 눈빛도 찍기를 원하는 듯했기에 찍지 않고는 돌아갈 수가 없을 듯하다.
음성 안내를 들으며 촬영 준비를 해 나간다.
그러던 도중, 바깥에서 세 명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러고 보니, 카에데 쨩은 어디서 아르바이트를 해?"
물어본 건 노도카였다.
"채용된다면 오빠랑 같은 패밀리 레스토랑이에요. 3월에 그만둔 사람이 많아서 지금이라면 단기도 괜찮다는 듯해서."
조금 부끄러운 듯이 카에데가 대답했다.
"그쪽에는 이미 연락해 뒀니?"
그건 마이의 질문이었다.
"오빠가 이야기를 해 줬어요. 그랬더니 다음 주에 점장님과 가게에서 면접을 하게 되어서……."
오늘 이력서용 증명사진을 찍으러 왔다는 것이다.
"힘내, 카에데 쨩."
"앗, 네. 열심히 할게요."
이제는 사쿠타의 증명사진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음성 안내만이 사무적으로 담담하게 사쿠타를 상대해 줬다.
"3초 후에 촬영합니다. 3, 2, 1……."
찰칵하고 소리가 나고, 졸린 표정의 사쿠타를 깨끗하게 찍어 줬다.



2

다음 날인 일요일. 사쿠타가 면접 중인 카에데와 점장에게 오렌지 주스와 따뜻한 커피를 가져오니, 두 사람의 이야기는 제법 진행되어 있었다.
"그럼, 아즈사가와 카에데 씨."
"앗, 네."
"언제부터 근무가 가능할까요?"
이미 아르바이트 첫날을 정하는 단계다.
사쿠타가 가게를 찾은 손님을 맞이한 5분 정도의 사이에 면접은 다 끝난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사쿠타 때도 짧았었다.
지금 카에데가 앉아 있는 곳은 입구에서 먼 창가 자리. 사쿠타가 2년 전에 면접을 받았을 때도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이 했다. 시간도 오늘과 똑같은 일요일의 정오가 조금 지났을 무렵. 평범하게 손님도 있는 공간에서 아무 일도 없이 면접이 진행되어 간다.
주로 면접에서 점장한테 들은 건 두 가지.
하나는 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려고 마음 먹은 것인가.
또 하나는 어째서 우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한 것인가.
그리고는 간단한 잡담을 하고, 지금 카에데처럼 "그래서 언제부터 올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사쿠타가 오렌지 주스를 카에데 앞에 두니, 도움을 바라듯이 카에데가 올려다본다.
하지만 사쿠타는 구태여 아무 말도 않고, 점장 앞에 따뜻한 커피를 뒀다.
점장은 사쿠타에게 질문을 한 것이 아니다.
카에데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 일할 수 있을지를,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는 카에데 본인에게.
"……."
한동안 말이 없던 카에데였지만, 구조선이 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는지 정면에 앉아 있는 점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저기, 아까 말했던… 말씀드렸던 대로 저는 등교 거부를 했었어요."
"……."
카에데의 말에 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뿐이면 불안하기에, 만약 가능하다면 오빠랑 같은 날이어도 될까요?"
조금 말이 빨라지곤 마지막까지 단숨에 말했다.
그 표정에는 명백하게 망설임이 있었다. 이런 요구를 해도 되는 건지. 말하고 난 다음에도 망설이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래도 했던 말을 철회하거나 정정하지는 않는다. 제대로 자신의 의사를 초면의 점장에게 전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그렇게 말하고 점장이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되나요?"
"물론이죠. 아즈사가와 군, 다음 근무는 언제였지?"
카에데에게 대답하고, 점장이 사쿠타를 쳐다봤다.
"다음 주 수요일 저녁이에요."
그 대답을 듣고, 점장은 다시 카에데에게 시선을 돌린다.
"다음 주 수요일은 어떤가요?"
그리고 다시 카에데에게 확인차 묻는다.
"괜찮아요."
무릎 위에서 두 손을 꼭 쥔 채 카에데는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그래도 유니폼이 있으려나? 가게에 있는 예비 유니폼이 사이즈가 맞으면 좋을 텐데……."
혼잣말을 하듯이 그렇게 말하던 점장은
"오늘 아직 시간 있니?"
라고 조금 스스럼없는 태도로, 돌연히 카에데에게 말을 건다.
"앗, 네."
조금 움찔하곤, 카에데는 확실히 대답했다.
"유니폼을 잠깐 입어 보지 않을래요?"
"아, 알겠습니다."
긴장한 등줄기는 그대로인 채, 카에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즈사가와 군을 여자 탈의실에 들여보낼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점장이 가게를 둘러본다.
"아, 코가 양. 잠깐 괜찮을까?"
미소로 손님을 배웅하던 토모에에게 점장이 손짓을 한다.
"무슨 일인가요?"
의아하다는 얼굴로 다가온 토모에는 사쿠타와 점장과 카에데를 번갈아가며 본다.
"탈의실로 안내한 뒤에 유니폼 입는 것 좀 도와주지 않겠니?"
"알겠어요."
대답을 하고 토모에는 흘끗 사쿠타를 신경 썼다.

카에데와 토모에가 들어간 여자 탈의실의 앞에서 기다리길 약 5분.
방금 전까지 문 너머로 들리던 두 사람의 목소리나 움직이는 소리가 딱 멎었다.
"선배, 준비 됐어?"
대신 들려온 것은 토모에의 목소리.
"갈아입으면서 준비를 한 건 그쪽이잖아?"
"선배가 마음의 준비가 됐냐는 뜻이야."
분개하는 토모에의 목소리가 제법 울려퍼진다. 손님이 있는 곳까지 들리지 않는다면 다행이겠다만…….
"문 열게."
사쿠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목소리에 이어 문이 열렸다.
나타난 건 낯익은 웨이트리스 복장을 몸에 두른 낯선 분위기의 카에데다.
"어, 어때? 오빠……?"
시선을 위로 향하며 카에데가 쳐다본다.
"사이즈는 딱 맞는 거 아니야?"
정확한 코멘트를 남긴다. 치마는 너무 짧지도 않고 너무 길지도 않다. 소매 길이도 딱 맞다. 앞치마도 허리에 딱 알맞게 조여져 있어 보여서 정말로 딱 적당했다.
그런데 어째선지,
"선배, 맛이 갔네."
라며 토모에한테 실례되는 말을 들었다. 가늘게 뜬 눈마저 무례하다.
"난 다른 사람한테 맛이 갔다고 하는 녀석이 더 맛이 갔다고 생각한다만."
"선배도 말하고 있구만!"
"들켰나."
"보통 여기선 잘 어울린다든가 귀엽다든가라고 해야지."
질렸다는 듯한 표정으로 토모에가 올바른 행동을 가르쳐 준다.
"코가는 유니폼도 잘 어울리고 귀여워."
"나한테 말하지 마!"
"말하라고 한 건 코가잖아?"
"여동생한테 하란 뜻이야!"
토모에가 카에데에게 시선을 보낸다. 따라서 사쿠타도 카에데를 보고, 카에데는 신기하다는 듯한 얼굴로 사쿠타와 토모에를 번갈아가며 본다.
아마도 사쿠타의 교우 관계에 놀란 것일 것이다. 뭔가 말하려고는 했지만, 초면인 토모에를 앞에 두고 좀처럼 말이 나오질 않는다.
이상한 소리를 하기 전에 이야기를 똑바로 진행시키는 게 좋을 듯하다.
"코가, 뭐 때문에 입어보라고 한 것 같아? 점장님은 뭐라고 했지?"
"유니폼 사이즈를 확인하기 위해."
떨떠름한 표정으로 토모에가 정답을 말한다. 그게 분했던 것인지,
"선배, 완전 짜증 나. 억수로 짜증 난데이!"
라며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말했다.
그거에 반응한 건 카에데였다.
"……억수로 짜증 난데이?"
토모에가 말한 낯선 말을 반복한다.
"코가는 후쿠오카 출신인 걸 숨기고 살고 있어. 아마도 이미 친구들한테도 들켰을 것 같긴 한데, 카에데도 비밀로 해 줘."
"으, 응."
"선배, 완전 짜증 나."
이번에는 "억수로 짜증 난데이."라고 말할 뻔한 걸 참고 있었다.
"뭐, 그렇게 됐으니까."
"뭐가 그렇게 됐는데?"
이야기를 똑바로 진행시키려던 사쿠타의 말에 토모에가 바로 뒤따른다. 하지만, 그거에 상관하지 않고 사쿠타는 할 말을 이어갔다.
"골든 위크가 끝날 때까지 짧은 기간이지만, 수요일부터 카에데도 근무를 시작하니까 코가도 잘 부탁할게."
"아, 응."
그렇게 순순히 대답을 하고, 토모에는 카에데를 올려다본다. 두 사람의 키 차이는 10cm.
"코가 토모에라고 해. 잘 부탁해."
"아, 네. 아즈사가와 카에데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그럼, 유니폼은 괜찮을 것 같다고 점장님한테 전하고 올게."
"아, 잠깐만 오빠."
"응?"
"저기…… 이상하진 않아?"
얼굴을 돌린 카에데가 그렇게 묻는다.
"뭐가?"
"유니폼 말이야."
"사이즈는 딱 맞다고 했잖아?"
"그게 아니라…… 딱히 엄청 잘 어울릴 필요는 없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건 싫으니까."
"뭐, 평범하지 않을까."
"평범하다면 됐지만."
그걸로 납득이 된 건지, 조금 안심한 듯한 표정으로 카에데는 여자 탈의실 안으로 들어간다. 남아 있던 사쿠타한테 토모에가 시선을 보낸다. 그 눈빛은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아니, 실제로 말로써 했다.
"선배는 여동생한테는 엄청 다정하구나. 흐~음."
이 이상 쓸데없는 소리를 듣기 전에 빨리 자리를 뜨는 편이 좋다.
"이번에야말로 점장님한테 전하고 올게."
그렇게 말하곤, 사쿠타는 그 자리를 떠나기로 했다.



3

막상 카에데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보니, 여러모로 허둥대긴 했어도 딱히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고 몇 주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달력이 4월에서 5월로 변할 무렵엔 사쿠타는 사쿠타대로 3학년이 된 것에 익숙해져서 착각하고 2학년 교실로 갈 뻔하는 일은 없었다.
카에데도 노트북으로 듣는 통신제 고등학교의 수업에 조금씩 적응해 가고 있었다. 더욱이 사쿠타가 사는 후지사와랑 부모님이 있는 요코하마의 집을 왕래한다는 독자적인 생활 스타일도 최근 1개월 동안 확립되어 갔다.
아르바이트에도 순조롭게 적응하기 시작했고, 기본적인 접객 업무는 혼자서 할 수 있을 정도까지 됐다.
이날도 사쿠타가 포크나 나이프 등의 기물을 닦고 있을 때,
"3번 테이블, 주문 대기 중입니다."
라고 식기를 치우고 돌아온 토모에의 목소리가 들렸고,
"아, 토모에 언니, 제가 갈게요."
라고 카에데는 솔선해서 접객 업무를 이어받았다.
"카에데 쨩, 고마워~ 부탁할게~"
토모에의 대답을 뒤로하고, 카에데는 3번 테이블로 향한다. 앉아 있는 건 대학생처럼 보이는 커플.
"주문하시겠어요?"
떨지 않고 주문용 단말기를 손에 들더니, 카에데는 제대로 상대방의 얼굴을 보며 말을 걸었다.
첫날에는 손님한테까지 전염될 정도로 뻣뻣하게 긴장했었는데……. 이 짧은 기간 동안에 제법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카에데 쨩은 이제 완전히 익숙해진 모양이네."
사쿠타의 옆자리로 온 유마는 어쩐지 기쁜 모양이다.
"쿠니미랑 코가가 도와준 덕분이야."
오늘까지 사쿠타의 손이 비어 있지 않을 때는 두 사람이 꼬박꼬박 도와줬다. 카에데가 접시를 깨뜨렸을 때는 유마가 즉시 달려와서 정리를 도와줬고, 카에데가 주문을 잘못 입력했을 땐 그걸 눈치챈 토모에가 바로 정정해 줬다.
"일등 공신은 사쿠타잖아?"
약간 놀리는 듯한 분위기를 띈 유마의 발언은 못 들은 것으로 했다. 그런 유마는 사쿠타의 옆에서 포크를 닦기 시작했다.
사쿠타로서는 카에데에게 무언가 특별한 것을 해 줬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평소대로 대하고 있다. 단지 그뿐이다.
묵묵히 사쿠타가 포크를 닦고 있을 때
"선배, 새로 손님 왔어!"
라고 햄버그 철판으로 양손이 묶인 토모에가 말을 걸어 왔다. 자기 대신에 손님을 마중 나가달라는 뜻이다.
"괜찮아, 내가 갈게."
닦은 포크를 커틀러리 케이스에 집어넣은 유마가 입구로 향한다.
"어서 오세요. 베니즈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아니, 너희였구나."
들어온 건 새것처럼 보이는 미네가하라 고등학교의 교복을 입은 남자 학생이 네 명. 유마의 태도로 보아, 올해 입학한 농구부의 후배들일 것이다.
그들은 웃으며 유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직 알고 지낸 지 얼마 안 됐을 텐데, 완전히 유마는 후배들에게 사랑받는 모양이다.
담소를 나누며 유마는 네 명을 박스석에 안내한다.
그러더니 그 뒤로 다른 손님이 찾아왔다.
유마도 토모에도 카에데도 지금은 접객 중이다.
사쿠타는 포크를 닦는 것을 멈추고 손님 쪽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 아니, 후타바구나."
딱 보니 아는 얼굴이었다. 머리는 묶어 올렸고, 안경을 걸친 채 편한 차림의 사복.
"오늘 부모님 두 분 다 집에 안 계셔서 바깥에서 해결할까 싶었거든."
묻지도 않은 이유를 변명하듯이 리오가 알려준다.
"자리 있어?"
"쿠니미가 아니어도 돼?"
사쿠타가 농담하듯이 말하니,
"그럼, 체인지 해 줘."
라고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
"미안, 농담이야. 아즈사가와여도 상관없어."
당황한 사쿠타에게 리오가 다시 말한다.
"후타바치곤 보기 드문 농담이네."
유마에 관해 농담을 할 수 있을 정도는 됐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아즈사가와가 쓸데없는 소리를 하니까 그렇지."
"자리로 안내하겠습니다."
쓴웃음으로 리오를 테이블 자리로 데려간다. 아까 전의 4인 그룹과는 조금 거리를 뒀다. 
"이쪽 자리 괜찮으실까요?"
"응."
대답을 했을 때는 이미 리오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럼, 메뉴를 정하시면……"
"지금 바로 주문해도 돼?"
"나중에 쿠니미한테 주문받으러 오라고 해도 돼."
"아즈사가와가 주문하기에 편해."
"나는 의외로 접객이 훌륭하단 말이지."
"……."
사쿠타의 재담에 리오는 전혀 반응해 주지 않는다. 펼친 메뉴판에 의식이 집중되어 있다.
"딱히 후타바가 무얼 먹든 얼마나 칼로리를 섭취하든, 쿠니미는 신경 쓰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 유마라고 한다면, 한창 후배들의 주문을 받는 중이다. 네 명의 앉아 있는 남자들 중 한 명에게 시선이 멈춘다. 딱 한 명이 남들보다 제법 눈에 띄었으니까. 제법 큰 신장. 유마랑 같거나 그 이상은 될 듯하다.
사쿠타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 장신의 남자가 한 차례 이쪽을 쳐다봤다. 하지만 금방 허둥대는 모습으로 눈을 돌린다. 몸집이 큰 것과는 반대로 꽤 소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쿠니미는 신경 쓰지 않더라도 내가 신경 쓰인단 말이야."
"뭐, 그럴 거라곤 생각했어."
리오에게 시선을 돌린다.
비프 스튜로 할지 오므라이스로 할지 고민하는 모양이다.
"참고로 비프 스튜에 밥 소자를 주문하면 대충 오므라이스랑 비슷한 칼로리야."
천천히 리오가 메뉴판을 보던 고개를 든다. 어째선지 조금 노려봤다.
"그럼 비프 스튜에 밥 소자. 그리고 이 샐러드로."
들은 대로 단말기에 주문을 입력한다. 무사히 주문이 처리되었다. 지금쯤 주방에 전표가 나왔을 것이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사쿠타가 리오의 테이블에서 떠나려 하니,
"주문하시겠어요?"
라고 두 칸 옆의 자리에서 카에데의 목소리가 들렸다. 4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과 중학생 딸로, 두 명의 손님. 딸이 중학생이라는 걸 알았던 건 아는 교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에데가 다녔던 중학교의 교복이다. 카에데도 3월까지는 입었었다. 입고 보건실로 등교했었다.
한순간 카에데가 그녀의 교복을 신경 쓴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단순히 신경이 쓰였을 뿐이다. 확실히 주문을 들은 카에데는 "미트 스파게티 맞으시죠?"라고 웃으며 주문을 되물었다.
"아르바이트는 순조로운 모양이네."
카에데를 바라보던 리오가 사쿠타에게 그렇게 말했다.
"고등학교 수업에도 익숙해져서 매일 즐겁게 듣고 있어."
"잘됐네, 아즈사가와."
"뭐, 그렇지."
분명하게 말로 하는 건 부끄러웠기에, 사쿠타는 애매하게 웃으며 리오에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그럼, 편히 기다려 주세요."
라고 전하고 계산서를 든 손님이 있는 계산대로 약간 서둘러 이동했다.



4

되돌아보면 1개월은 짧은 법인지라, 문득 깨닫고 보니 카에데의 단기 아르바이트는 마지막 날을 맞이했다.
골든 위크의 마지막 날.
이날, 아르바이트를 끝낸 사쿠타가 가게에서 나온 건 밤 9시 20분경. 평소라면 바로 갈아입고 9시 5분에는 가게를 나왔을 것이다. 카에데가 함께였던 지난 1개월 동안에도 9시 5분에는 "고생 많으셨습니다."라고 인사를 했었다.
오늘 늦어진 건 점장에게 인사를 하려는 카에데랑 같이 가느라. 그 점장에게 "이대로 계속 해 주면 좋을 텐데."라는 말을 듣고, 대화가 일단락되기까지 약간 시간이 걸렸던 탓이다.
"점장님한테 죄송한 일을 한 걸까."
맨션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문득 생각이 난 것처럼 카에데가 말했다.
"그냥 계속 했어도 되지 않았어?"
웨이트리스 일에도 완전히 적응했고, 토모에랑 유마하고도 친해졌다.
"그래도 계속 한다고 생각하면 지금은 아직 자신이 없어."
"그렇구나."
기한을 정했기에 분발할 수 있는 일도 있다.
"계속 한다 치면, 매번 오빠랑 같은 시간대에 근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뭐, 그렇지."
확실히 쭉 세트로 근무를 짜게 되면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그래서 조금만 더 자신감이 생기면 제대로 시작해 보고 싶어."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듯이 카에데는 자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사쿠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걸로 됐다고 생각하니까.
대화는 끊기고, 두 사람은 사카이천에 걸친 다리를 건넌다. 다리를 건넌 끝에 주택가에 들어서니, 지나다니는 사람은 단숨에 확 줄었다. 자동차의 주행음이 멀어지고 갑자기 조용해진다.
그걸 기다렸다는 듯한 타이밍에
"오빠."
라고 카에데가 다시 불렀다.
"응?"
완만한 언덕길을 한 걸음씩 나아간다.
"의논할 게 있는데 말이야."
약간 격식을 차린 듯한 말투.
"이번 달은 나도 위태로우니까, 돈이라면 못 빌려줘."
"그런 의논은 안 해."
질렸다는 듯한 시선이 옆에서 박힌다.
"그럼 뭔데?"
"마이 언니는 뭘 좋아하려나?"
카에데가 한 것은 조금 의외의 질문이었다. 하지만 간단한 질문이다.
"나겠지."
"진지하게 묻는 거야."
"진지하게 대답했잖아?"
틀리진 않았을 터다. 사쿠타는 마이와 사귀고 있다. 사쿠타에게 마이는 사랑하는 여자 친구. 마이에게 사쿠타는 사랑하는 남자 친구일 터. 그렇지 않으면 곤란하다.
"그럼, 노도카 언니는 뭘 좋아하려나?"
"마이 씨겠지."
"그러니까 진지하게 묻는 거라니까."
"그러니까 진지하게 대답했잖아? 토요하마의 프로필을 봐 봐. 좋아하는 것에 '사쿠라지마 마이'라고 적혀 있다고?"
처음 봤을 때는 두 눈을 의심했다. 프로필이 이래도 괜찮은 건가 싶었다. 사무소에서 용케 허락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긴 한데, 그게 아니라."
생각했던 대답을 얻지 못해 카에데의 입가는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갑자기 왜 두 사람이 좋아하는 게 뭔지 궁금해진 거야?"
"항상 신세를 지고 있잖아."
"그래서?"
"아르바이트비가 나오면 답례를 하고 싶어."
"……."
너무나도 착실한 이유에 그만 할 말을 잃는다. 동시에 '그렇구나'하고 이해도 했다. 카에데도 그런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연령이 된 것이다.
통신제 고등학교에 다니기로 결심해서 4월부터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며 말을 꺼냈고…… 사쿠타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카에데는 정신적으로도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마이 씨는 토끼로 된 무언가면 되지 않을까?"
"노도카 언니는?"
"사자로 된 무언가?"
솔직히 노도카가 좋아하는 건 '사쿠라지마 마이' 말고는 모른다.
"무언가라니?"
"무언가는 무언가지."
"뭐야, 그게."
뾰로통한 표정으로 카에데가 비난한다.
"카에데한테 받는 선물이라면 뭐든 기뻐할 거야. 마이 씨도, 토요하마도."
이 결과만큼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걸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것도 마이라면 눈치챘을 것이다. 노도카도 눈치챘을지도 모르고.
"이상한 선물을 골라서 마이 언니랑 노도카 언니가 마음을 쓰게 만들면 의미가 없잖아."
제법 건방진 소리를 한다. 카에데도 여러모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뭐, 중요한 건 마음이지."
"그런 건 당연하지."
사쿠타의 알맞은 조언은 단숨에 두동강이 나 버린다.
오늘은 5월 6일.
급여일이 곧 온다.



5

5월 9일, 토요일.
점심밥을 집에서 해결한 후, 사쿠타는 식재료를 사러 외출했다. 다만, 슈퍼로 가기 전에 은행 ATM에 들른다……라기보다도 들르게 되었다.
"오빠, 통장은 어느 방향으로 넣어야 해?"
"그쪽으로 넣는 거 맞아."
원래 급여일은 매달 10일지만, 토일에 겹치면 전날 송금된다. 즉, 이번 달은 어제였던 8일이 실질적인 급여일이다.
카에데에겐 첫 아르바이트비.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새로 만든 통장이 ATM에 빨려 들어간다. 지금은 계좌를 만들 때 맡긴 천 엔밖에 들어 있지 않은 통장.
지지직하고 ATM이 무언가 작업을 하는 소리가 난다. 그 소리가 멈추는가 싶더니 카에데의 통장이 슥하고 튀어나왔다.
쭈뼛거리며 카에데가 통장을 받는다.
펼쳐져 있는 통장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쏠렸다.
거기엔 아까 전에는 없었던 숫자가 새겨져 있을 터.
"……."
카에데는 말 없이 통장을 바라보고 있다.
확실히 아르바이트비가 송금된 것은 일부러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도중부터 카에데의 입가가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으니까.
"웃음이 멈추지 않을 정도로 큰돈이 보내져 있었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들어 있어."
오늘 송금된 것은 4월에 일한 몫. 카에데가 아르바이트를 했던 약 3주간의 대가. 대체로 주에 3일. 하루 4~5시간의 노동에 대한 것. 막 고등학생이 된 카에데가 한 번에 얻은 금액으로는 인생 최고액일지도 모른다.
그걸 자신이 일해서 번 것이니까 히죽거리고도 싶을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막 시작했던 때의 사쿠타도 그랬었다.
급여일에 통장을 보는 것이 하나의 재미였다.
그런 걸 생각하면서 사쿠타도 기록만 끝낸 채 ATM 코너를 나왔다.
"오빠는 아르바이트비 얼마였어?"
"자."
막 기록된 통장을 카에데에게 보여준다.
"앗, 이만큼이나 저금했어!?"
지난달 아르바이트비가 아니라, 카에데는 총액에 놀랐다.
"매달 꾸준히 일해 왔으니까."
최근 1년 동안은 예기치 못한 지출도 있었지만……. 오가키(大垣)까지 갔다거나, 카나자와(金沢)까지 갔다거나……. 결과적으로 즐거웠으니 됐지만…….
"뭐, 그래도 대학 학비로는 아직 부족하단 말이지."
"그렇구나."
"이대로 계속 벌어들여도 겨우 1년치가 되려나."
2학년 이후의 학비는 다시 모아야만 한다. 물론 사쿠타의 경우에는 부모님한테 기대면 해결되는 문제이긴 하다. 그건 알고 있지만, 지금도 사택(社宅)에서 생활하는 부모님께 그다지 부담을 드리고 싶진 않다.
"대학에 들어가면, 좀 더 시급이 좋은 아르바이트를 찾는 수밖에 없겠어."
"그건 예를 들면 어떤 건데?"
"그렇지."
생각하는 척을 하며 시선을 돌린다. 그랬더니 학원의 간판이 눈에 띄였다.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는 시급이 괜찮을 것 같던데."
"그거 괜찮네."
틀림없이 "오빠가?"라며 차가운 시선이 날아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카에데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이 왔다.
"나하고는 안 어울리잖아."
"오빠는 나름대로 공부 가르치는 거 잘하잖아."
"그런가?"
확실히 카에데한테 공부를 가르쳐 주긴 했지만, 이렇게 평가받고 있는 줄은 몰랐다.
"마이 언니나 노도카 언니 정도는 아니지만."
사쿠타의 시선이 카에데를 향하니, 카에데는 딴곳을 보며 그렇게 말을 덧붙였다.
"마이 씨는 그렇다 쳐도, 토요하마한테 지는 건 울컥하네."
"그건 과목의 차이도 있긴 하지만……."
주로 사쿠타가 가르쳐 준 건 이과 쪽 과목이다. 노도카는 영어가 메인이었다.
"나는 수학은 자신 있지 않았으니까."
일단 카에데 나름의 격려겠지.
"아무튼 나는 괜찮다고 생각해."
"뭐, 대학에 합격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그렇게 말을 하며 슈퍼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역 앞까지 나온 것은 식재료를 사기 위해서다. 그러던 중에
"아, 오빠. 나는 약속이 있어서 가 볼게."
라며 카에데가 역과 슈퍼의 갈림길에서 멈춰선다.
"약속?"
"코미 쨩하고 조금 이따 역에서."
카에데가 말하는 '코미 쨩'은 소꿉친구인 카노 코토미를 얘기하는 것이다.
"오늘은 둘이서 뭘 하는데?"
"그냥 좀 어디 다녀올 거야."
그 이상은 가르쳐주지 않겠다는 얼굴이다.
"맞다. 그리고 오늘은 집에 돌아오지 않을 거야."
이야기를 바꾸려는 것처럼 카에데가 그렇게 이어서 말했다. 
"밤놀이는 적당히 해."
"아빠랑 엄마네 집으로 간다는 뜻이야."
"알고 있어."
올해 봄부터 카에데는 두 거점의 생활을 보내고 있다. 배우는 장소가 제한되지 않는 통신제 고등학교에 다니기에 가능한 카에데의 생활 방식은 솔직히 조금 부럽기도 하다.
"화요일에 돌아갈게."
그렇게 말하고 카에데는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역 건물 속으로 사라져 간다. 그 발걸음은 당당했다. 주변의 사람들에 겁먹은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카에데도 듬직해졌네."
혼잣말을 하고서 사쿠타도 걷기 시작했다. 물론, 슈퍼가 있는 방향으로. 감자, 당근, 삼겹살……이라며 머릿속에서 사 갈 것들을 되뇌며…….



6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고 딱 중간인 수요일.
아침에 나스노에게 얼굴을 밟히며 일어난 사쿠타는 학교에 갈 준비를 하고서는
"그럼, 다녀올게."
라며 어제 사쿠타의 집에 돌아온 카에데한테 말을 걸었다.
아직 졸린 듯한 카에데의 대답은 기다리지 않고 현관으로 향한다.
열쇠를 손에 들고, 구두를 신는다. 그러던 중에
"오빠, 잠깐만 기다려."
라며 잠옷 차림의 카에데가 불러 세웠다.
"응?"
"이거 줄게."
건넨 것은 간소하고 새하얗고 조그마한 포장.
겉면에는 '에가라텐 신사(荏柄天神社)'라고 적혀 있다.
"뭐야, 이거?"
"그냥 열어 봐."
포장의 입구를 열고, 내용물을 손바닥에 떨어뜨린다.
나온 것은 감색(紺色)의 부적.
'합격 부적'이라고 자수가 놓여 있었다.
"뭐야, 이거?"
"보면 알잖아."
사쿠타의 반응에 카에데가 입술을 삐죽 내민다. 불만을 표하고 있었다.
"뭐, 보면 알기야 하지만."
이른바 합격 기원 부적. 에가라텐 신사라고 하면, 학문의 신으로 유명한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真)를 모시는 수험생의 든든한 아군이다.
장소는 카마쿠라의 얼굴인 츠루가오카 하치만궁(鶴岡八幡宮)을 조금 지나서.
카에데는 일부러 발걸음을 옮겨서 사쿠타를 위해 사 온 것이다.
아마도 요전번 토요일. 코토미랑 같이 가서.
"필요 없으면 돌려줘."
부적을 향해 뻗어 온 카에데의 손을 사쿠타는 휙 피했다.
"이걸로 나도 합격에 한 걸음 가까워졌네."
그렇게 말하며, 사쿠타는 가방 끈에 부적을 묶었다.
"오빠가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합격 못 해."
"혹시나 싶어서 묻는데, 마이 씨랑 토요하마한테는 줄 건 어떤 걸 샀어?"
카에데의 정론을 흘려듣고, 궁금했던 것을 묻는다. 아마도 두 사람에게도 줄 것을 아르바이트비로 무언가 샀을 터.
"노도카 언니는 대학 수험이 있으니까 오빠 거랑 색깔만 다른 부적."
카에데의 손에는 사쿠타가 받은 것과 똑같은 새하얀 포장이 2개 더 있다. 나중에 마이와 노도카한테 건네줄 물건일 것이다.
"이왕이면 마이 씨랑 같은 거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치만 마이 언니는 시험 안 치르잖아."
"이미 합격했으니까."
"그래서 일에 관련된 방송이라고 하나? 그런 걸로 하려고 할까 했는데, 마이 언니가 지금보다 더 일거리가 늘어나면 힘들지 않을까 해서."
"그렇겠지."
학업은 순조롭다. 방송 쪽도 마이는 예능계의 최전선에서 대활약 중이다. 사쿠타라는 애인이 있기에 연애 성취도 필요 없다. 신도 무얼 도와줘야 좋을지 망설일 정도로 충실하다.
"그래서 건강 부적으로 했는데…… 이상하려나?"
불안한 모양인지 카에데가 묻는다.
"괜찮지 않을까. 마이 씨는 항상 너무 바빠서 조만간에 쓰러지진 않을지 나도 걱정되기도 하고."
"그렇겠지. 다행이다."
안심했다는 듯이 카에데가 한숨을 폭 쉬었다.
"그럼, 나는 학교 다녀올게."
"아, 응. 잘 다녀와."
카에데의 목소리로 배웅받으며 집을 나선다. 그때 카에데의 시선을 등 뒤로 강하게 느꼈다. 아니, 정확히는 가방에서 느껴졌다.
사쿠타의 가방에 달려 있는 부적을 아주 만족스럽게 쳐다봤을 것이다. 그 얼굴엔 조금 흥미가 있었지만, 사쿠타는 뒤돌아보지 않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전철 시간도 가까워져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온다.
한 번 부적이 제대로 달려 있는지 확인했다.
선물이 부적이라는 건 중후한 느낌이 드는 선택이다. 하지만 카에데답다고 느꼈다. 많은 사람들의 따스함에 도움받고, 오늘에 이른 카에데다움.
공동 현관에 나오니, 평소 습관대로 우편함에 시선이 향한다. 평소대로 이 시간대에는 비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늘에 한해서는 달랐다. 입구에 무언가가 끼워져 있다.
신경이 쓰여서 우편함을 열어 보니, 하늘색의 서양식 봉투가 들어 있었다.
어제 사쿠타가 학교에서 돌아온 다음에 도착한 것일 것이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터.
받는 사람에는 '아즈사가와 사쿠타 님'이라 적혀 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글씨체.
뒤집어서 보낸 사람을 살핀다.
생각했던 대로 '마키노하라 쇼코'라고 적혀 있었다.

맑은 봄 하늘 아래.
역으로 향하면서 사쿠타는 풀칠된 봉투의 입구를 조심스레 벗겨냈다.
두 번 접힌 연청색의 편지지를 꺼내어 펼친다.

사쿠타 씨, 잘 지내고 있나요?
3학년이 되고 벌써 한 달이 지났네요.
새로운 반에는 익숙해졌나요?
저는 새로운 중학교에서 친구가 생겼어요.
오키나와에서의 생활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어요.
그쪽은 아직 봄다운 계절이겠죠?
이쪽은 벌써 여름 같아요.
매일 반팔을 입고 지내요.
힘들겠지만, 수험 힘내세요.
응원할게요!

편지에는 한 장의 사진이 동봉되어 있었다.
푸른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반팔 차림의 쇼코가 웃고 있었다.
행복해 보이는 얼굴 가득한 미소.
"정말 여름 같네."
이쪽은 아직 봄다운 바람이 분다.
그것을 편지에 적어 쇼코에게 전하자.
그러한 생각을 하며 사쿠타는 역으로 서둘렀다.
발걸음은 평소보다도 가벼웠다.



작가 후기

극장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카모시다 하지메-

 

 

 

 

 

 

아무래도 한국에서 개봉하더라도 이 소설을 번역해서까지 배부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서 가볍게 번역해 봤습니다. 비매품이기도 하고 해서 일단 올려 보기는 했습니다만, 혹시라도 문제가 된다면 추후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