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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량기념물/공지 사항

새삼스럽지만 자막 제작을 그만둔 이유에 대해.

by 불량기념물 2020. 4. 14.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자막 제작이나 배포에 관한 활동은 지금도 전혀 생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최근에도 가끔씩 자막을 찾거나 복귀를 바라는 듯한 댓글이나 아직도 관련 글에 종종 불씨가 보이기에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는 게 좋지 않은가 싶어서 글을 쓰게 됐습니다.

  당시에는 어차피 그만두는 건데 장황하게 적기도 번거롭고 그냥 그만둔다는 짤막한 글만 남겼는데, 이게 다소 오해를 낳은 모양이네요. 학생회 임원들이 기폭제 역할을 하긴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다른 문제가 더 컸습니다.




1. 자막 제작 자체에 대한 흥미 저하

  그동안 팬 서브라는 명분 하에 혼자 만족하며 지내왔습니다. 누군가 이 자막을 붙여서 영상을 본 뒤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그것이 BD/DVD가 됐든 굿즈가 됐든 원작이 됐든 소비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가장 큰 기쁨일 거라 생각해 왔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게 그저 단순히 자기 변호를 위한 생각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들더군요.

  그 외에도 사실 이러한 활동이 경력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걸 넘어서서 오히려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나, 이런저런 다양한 시도를 해 보면서 재미를 느꼈던 과거에 비해 매너리즘에 크게 빠져 있었던 점도 같이 작용하면서 더욱 흥미를 잃지 않았나 싶습니다. 매 분기마다 작업은 시작하고 싶은데, 막상 시작하고 나면 4~5주차부터 마치 일이라도 하는 것마냥 의무감 비슷한 느낌이 생기면서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이러면 정말 '자막 기계'에 불과하지 않은가 싶은 그런 생각 말입니다.

  여기에 2018년 같은 경우엔 대량으로 블라인드를 먹은 적이 있었고, 이때 느꼈던 허무함도 한몫을 해서 결국 2018년 2분기를 끝으로 활동을 종료하는 방향으로 갔습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지내다 보니 또 그동안 해 온 게 있었던 탓인지 다시 자막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깐 복귀해 보기도 했습니다만, 역시 예전만큼의 열정이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금방 다시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2. 저작권자의 권리 행사

  이전까지는 공식적으로 수입/배급을 담당하는 회사 측에서도 팬 서브 단속은 거의 없었습니다.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예 음지에서 활동하던 아마추어 자막 제작자를 영입한 사례도 있을 정도니까요.

  그러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극장판을 중심으로 불법 자막에 대한 신고가 이루어지면서 이제는 제법 많은 작품에 대응하는 모양이더군요. 이 때문에 자막을 업로드하기 위해서는 해외에 서버를 둔 사이트로 링크를 걸든 해외 서버를 기반으로 하는 클라우드를 이용하는 등의 방법을 이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이게 상당히 번거롭습니다. 트래픽 초과를 감안해서 2개의 저장소를 운영해 본 입장으로서, 항상 두 군데 모두 일일이 업데이트를 해 줘야 하기에 할 일이 2배로 늘어나는 셈입니다. 애초에 원래 쓰던 블로그 외에도 별도로 관리를 한다는 점도 있으니 실제로는 2배 이상이겠죠.

  번거로운 건 그나마 참을 만한데, 저작권 위임자로부터 저렇게 적극적으로 나온다는 건 추후에 법적인 대응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합리적인 추측으로 이어질 수 있죠. 번거로운 거야 취미의 일환이니 조금 참으면 된다지만, 상대방이 강경하게 법으로 해결하겠다고 나오면 그땐 정말 골치가 아픕니다. 몇 년 전에 미드 쪽에서 본보기로 강경 대응을 했던 사례도 있고요. 이 활동으로 얻는 이점은 '2차 창작에 의한 만족감'뿐인데, 그 대가로 벌금형 이상의 형사 처벌이나 민사적 손해 배상을 짊어지는 리스크는 너무 크지 않은가 싶었습니다.


3. 시간적 문제

  이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취미 활동이었습니다. 취미에 들이는 시간이 너무 과해져서 일상에 악영향을 준다면 그건 본말전도인 셈이죠. 잠시 자막 제작 활동을 쉬는 사이에 모바일 게임을 하는 시간이 늘었고 그만큼 다시 자막 제작에 시간을 투자하자니 여유가 없었고, 그렇다고 당시에 그 게임을 그만두기도 싫었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제쳐두더라도, 24분짜리 애니메이션 한 편의 자막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시간은 그렇게 짧지 않습니다. 한창 작업하던 때엔 어지간하면 남들보다 빠르게 만들었음에도 60~80분 정도 걸렸고, 이걸 다시 스폰서 버전과 논스폰서 양식에 맞추어 게시물을 작성하고 저장소 두 곳에 나누어 따로 업로드를 했고, 추후에 수정할 일이 생기면 들어가는 시간은 더 늘어납니다.


가. 자막 제작 (60~80분)

  가-a. 생방송으로 실시간 타이핑  → 17~18년 무렵부터는 그냥 영상 뜨면 작업하는 걸로 바꿨습니다.

  가-b. 놓친 부분 보충이나 번역 교정

  가-c. 싱크 입력

나. 주석 처리

다. 스폰서 버전/논스폰서 버전

라. 노래방 자막          → 시간적 부담으로 2016년 무렵부터 만들지 않았습니다.

마. 드롭박스 계정 두 곳에 업로드

바. 양식에 맞추어 게시물 작성

사. 피드백 반영

아. BD/DVD용 싱크 조절

자. 피드백 반영


단순히 처음에 자막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할 일이 많고, 의외로 시간을 많이 갉아먹습니다. 이런 걸 고정적으로 반복하다 보면 정말 무시할 수 없는 큰 시간이 깎여 나가게 됩니다. 살다 보면 갑작스러운 일도 생기기 마련이고, 그럴 때마다 고정적으로 나가는 시간이 엄청나게 크게 느껴집니다.




  만약에 그 당시에 자막 제작 활동을 그만두지 않았더라도 얼마나 더 갔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8년이란 시간이 짧은 시간도 아니니 할 만큼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저는 완전히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도 종종 블로그 댓글로 잡음이 나오는 걸 보면 좀 그러네요. 아무튼 앞으로도 자막을 만들 생각은 없기도 하니, 댓글로 굳이 싸울 필요도 없습니다.

댓글18

  • 하곰 2020.04.14 19:11

    정말 예전부터 아마 군대가시기 전 ? 부터 불량기념물님 자막을 받아보면서 저도 군대 전역에 취업까지 나이가 들어가고 있네요. 오랜만에 복귀하실 때는 다시 오셨구나 하는 느낌도 있었고 그만두시는 것에 대해서도 그동안 고생하셨다고 생각이 들었네요. 덕분에 많은 작품을 볼 수 있었고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답글

  • 수고하셨습니다 2020.04.16 14:27

    8년이란 시간동안 너무나도 고생하셨습니다
    긴시간동안 한것에 비해 이것을 경력으로 작성하지도 못하고 누군가에게 말하면 이것을 정말 '불량기념물' 로 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저만은 이 자막을 통해 애니를 알게됐고 애니로 인해 일본어를 알게되었으며 일본어로 외국인과 대화해보며 외국어에 관심을가지게되어 현재 영어와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애니로 인해 저는 정말 생각이 바뀌고 삶이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애니를 볼수있게 자막을 만들어주신 불량기념물님 정말로 감사하며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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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탱이 2020.04.17 20:41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일본 여행 일상 글 들도 재밌게 보고있습니닷..!!
    답글

  • Angel. 2020.04.25 22:49 신고

    4~5주 되면 의무처럼 느껴지는 거 ㄹㅇ
    읍읍미인인가 하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여러모로 시끄럽긴 했으나
    잘 결단하신 것 같음...

    매주 고정적으로 시간 쓰는 걸로 인해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젊은 시절 다 보내면 나중에 너무 허망할 듯
    답글

    • 불량기념물 2020.04.25 23:42 신고

      예전에야 자막 만드는 그 자체가 재밌었으니까 취미로써 재밌게 잘 보냈으니 후회 자체는 없긴 한데, 문득 깨닫고 보니 젊은 시절은 일단 거의 다 갔네요.

      이제 일에 치이면서 살다 간혹 일본 가서 무대 탐방 다녀오고 그러는 낙으로 지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 ㅇㅇ 2020.04.25 23:08

    고생하셨습니다~

    답글

  •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2020.04.26 19:45

    오랜만에 옛날 애니메이션 자막을 못찾고 있어 들렀는데 은퇴 하셨군요 여태까지 정말 많은 자막 감사합니다
    제 어릴적 ? 에 입덕하게 해주신분이에요! 앞으로는 자신을위한 시간을 보내시겠군요 응원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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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2020.04.28 21:59

    자막 지금까지 잘 봐왔습니다 자막러들 정리하면서 오랜시간동안 제 개인 리스트에 계셨던 분이셨습니다. 은퇴하시게 되신다니 아쉽습니다만 세상일 다 흐르는거니까요 불량기념물님의 빈자리는 또 누군가가 매꾸게 되고 돌고 돌겠죠 새로운 일 하시는 일마다 잘되셨으면 합니다. P2P사이트 같은곳에서 불량기념물 님의 자막을 판매하는거 볼때마다 신고하고 싶은데 신고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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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량기념물 2020.04.29 23:09 신고

      기본적으로 저작권법은 친고죄라 피해자나 그 대리자가 아니면 신고해도 처리해 주지 않습니다.
      더욱이 불법 자막이기에 떳떳할 게 없으니 저도 굳이 신고할 생각은 들지 않고요.

  • 천연불량물 2020.05.01 21:27

    한달 전 애니 입덕하게되었다가 블로그 이름이 낯이 익어 들어오게되었네요..
    신세 많이졌습니다 그동안 즐거움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답글

  • dd 2020.06.14 04:08

    애니안본지 몇년이 됐는데 그동안 일이 많이 있으셨군요 불량님 자막덕분에 재밌게본 애니가 많이있었네요 덕분에 감사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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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2020.06.15 22:50

    돈받고 하는일 아니니 선생님 마음대로 하시는게 맞죠. 덕 많이 봤고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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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TX산천 2020.06.23 23:02

    제가 친구 덕분에 입덕을 한 이후로 처음 챙겨봤던 애니가 2013년에 나왔던 논논비요리 1기였지요.
    그 때 자막을 불량기념물님 자막으로 본 이후로 2018년까지 대략 5년간을 신세 졌었네요.

    지금은 군대 들어오고 나니 별로 애니를 안 보게 되더군요. 어디까지나 취미는 취미일 뿐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하니 굳이 신작 찾아서 챙겨볼 정도까진 아니고..

    5년동안 자막 잘 이용하면서 신세 많이 졌고 앞으로 하시는 일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답글

  • Dlayer 2020.06.26 00:47 신고

    여태까지 자막만 받아갔지 불량기념물님께 인사를 제대로 올리지못했네요.
    좋아하는 애니가 나올때마다 "아 이 분이 자막을 만드셨으면" 이라고 항상 생각했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물론 시간쪼개가며 좋은 자막만드시지만, 개인적으로 일어공부를 할 때 불량님의 자막을 보고
    "아 이런식으로 의역하면 자연스럽겠구나" 라며 공부에 매우 도움이 되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자막을 만드실 때 같이 들어있는 애니메이션 설정을 적어두신 텍스트파일(주석)을 보고 정말 감명받았던 기억도 있었구요.
    나중에서야 애니에 관심이 없을 때 오랜만에 접속해봤더니 불량님께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보고 정말 충격받았습니다....
    아무쪼록 몸관리 잘하시고 건강하시기를... 늦었지만 그 동안 자막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답글

  • ㅇㅇ 2020.12.05 23:04

    6년동안 불량기념물님 자막만 찾아보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댓글을 달게되네요. 중학생때부터 지금 군입대까지 정말 자막으로 많이 도움받았다고 생각합니다. 8년간 수고 많으셨고, 푹 쉬세요! 혹, 복귀하시게된다면 다시 찾아뵐게요!!
    답글

  • ㅇㅇ 2021.04.22 03:29

    학생때부터 성인까지 정말 오랜시간 잘 이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답글

  • 여보게저기저게보여 2021.06.22 02:04

    댓글보니까 사람을 너무 괴롭히던데
    쭉 봤는데 시비거는분들 너무한거같음;;
    아무래도 애니쪽이고(비하는 아님) 어떠한 보상을 받지않고 했던 일이다보니 개인적인 성취감도 있었겠지만
    중간중간 기분나쁜 사람들꼬이는건 어쩔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했어요 승진하십셩
    답글

  • 감사합니다 2022.01.24 22:46

    긴 시간 동안 감사했습니다 불량기념물님

    저 또한 중학생 때 애니를 미친듯이 보기 시작했을 때 불량기념물님의 자막을 접하게 되었고 덕분에 수많은 애니를 보면서 울고 웃고 화내고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불량기념물님 자막을 하도 많이 접해서 그런지 긴 시간 동안 동고동락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ㅋㅋ

    이제는 저도 전역하고 대학 졸업을 앞두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바쁜 와중에도 이전부터 쭉 소중히 해온 취미생활이라는 건 쉽게 바뀌지가 않더군요
    저 또한 앞으로도 소소하게 애니를 즐기고 가끔 일본여행도 가며 취미생활을 즐길 것 같습니다


    악플러들은 신경쓰지 마세요
    제가 오랜만에 생각나서 들린 것처럼 열심히 살아가는 와중에 가끔 불량기념물님을 생각해내고 감사함을 느끼는 사람의 비중이 훨씬 많다고 장담합니다


    불량기념물님
    앞으로는 오직 불량기념물님만의 취미를 위해 시간을 쓰시면서 계속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