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단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최동단의 느낌을 만끽하기 위해 망향의 곶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에 도착하고 보니, 이곳의 분위기는 최북단인 왓카나이와는 사뭇 달랐다. 왓카나이의 소야곶은 평화나 추모(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가 주된 분위기였다면, 네무로의 노삿푸곶은 영토 분쟁의 최전열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공원 어딜 가든 다 이런 문구로 도배되어 있어서 극점 여행으로 막 왓카나이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좀 당황스러운 느낌마저 들 정도로 온도 차가 심하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나랑 같은 날에 우연히 이쪽에 온 건지는 몰라도 자위대원들도 꽤 많이 보였다. 왓카나이 부근에도 자위대의 분주둔지가 있긴 할 건데, 그때는 자위대원은 코빼기도 안 보였던 거와는 사뭇 다른 풍경.
전시물의 이름은 '희망의 길'이지만, 역시나 북방 영토를 되돌려내라는 염원을 담아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四島는 그냥 시마(しま)라고 읽는 모양이다. 이 역시 북방 영토 분쟁 지역의 반환을 염원하여 만든 건축물이라고 한다.
안쪽에는 불꽃이 활활 타고 있는데, 이 역시 의미는 동일하다.
분위기가 이러하다 보니 이 근방에서 근무하는 자위대원들은 산책이나 휴식 차원에서 여길 종종 들렀다 가는 건가 싶기도 하고(...)
자료관이 있기는 했지만, 금방 돌아갈 예정이기도 했고 남의 나라 영토 분쟁에는 딱히 관심이 없기도 하고 해서 패스했다.
공원에는 딱히 이렇다 할 만한 관광 요소는 별로 없다. 왓카나이의 소야곶 역시 볼거리가 많다고 하긴 어렵긴 하지만, 이쪽은 정말 강경한 영토관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정말 볼 만한 게 없다 싶을 정도. 그렇다 보니 외국인 입장에서는 더욱 매력이 없는 편이다.
그나마 이 일대를 높은 곳에서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는 코로나 사태 이후로 관광객이 급감해서 임시 휴관에 들어갔고, 지금까지도 재개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나사키선(네무로 본선 중 쿠시로-네무로 구간의 애칭)의 수요 감소로 인해 폐선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이 지역의 관광 수요는 저조하다 보니 시 자체에서 뭔가 따로 대책을 강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나마 하나사키선과 연계되도록 시간표를 맞춰 놓은 게 다행이긴 하지만, 배차 간격 자체가 워낙 뜸하기 때문에 하나를 놓치게 되면 큰 타격을 입는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외국인 입장에서 이곳은 딱히 관광 요소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대충 슥 훑는 데에 40분이면 어지간한 건 다 돌아볼 수 있고 딱 버스 시간에 맞게 올 수 있다.
나 같은 경우는 50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점심도 해결하고 돌아볼 거 다 돌아보고도 시간이 남았다.
북방 영토 자료관 위에 그려진 섬들이 현재 러시아와의 영토 분쟁 지역들이다.
그렇게 네무로역에 도착해서 바로 연계되는 열차에 올라탔다.
크로스 시트와 롱 시트가 섞여 있는 모습으로, 지방의 철도에서는 종종 보이는 형태다.
운행 방향 반대쪽으로 가서 달려온 길을 바라보면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네무로 본선 전체가 그렇지만, 특히 하나사키선은 경적 소리가 엄청 자주 들린다. 이는 야생동물(조류 혹은 사슴)이 선로 근처에 출몰한 경우고, 큰 경적 소리와 함께 급감속이 동반되는 경우가 잦다. 재수가 없는 경우에는 그렇게까지 했음에도 결국 사고가 나기도 하고, 그럴 경우에는 심하면 10~20분 지연에서 길게는 몇 시간 이상 대폭 지연을 먹을 수 있다.
나는 다행히도 이번 일정 중에는 그러한 야생 동물과의 접촉 사고가 없어서 정시 운행이 이루어졌지만, 여기서 운을 쓴 건지 다음 날부터는 지독하게 운이 없었다.
2시간 반 동안 운행하는 열차인 데다 운행 간격이 굉장히 길기 때문에 1량짜리 열차임에도 불구하고 안에는 화장실 시설이갖추어져 있다. 대부분의 무인역에는 화장실 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기도 하니 급한 볼일은 차내에서 해결해야 한다.
저 멀리 보이는 건 방파제일 듯한데, 앗케시만과 이어진 앗케시호는 굴 양식장으로 유명하다.
홋카이도라고 하면 역시 넓고 비옥한 땅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이렇게 넓은 땅에 방목해서 키우는 풍경도 쉽게 볼 수 있다.
아무래도 개척된 역사도 짧고 땅이 넓은 만큼 여유도 많아 땅을 혹사시킬 일도 적다 보니 지력(地力)이 대단히 좋다. 그래서 홋카이도에서 수확한 작물이나 길러진 가축들은 맛이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오래된 차량인 데다 상대적으로 덜 더운 동네라 그런지 냉방 시설은 이게 끝이다.
쿠시로에 도착한 뒤 이른 저녁 식사로 회전초밥을 선택했다.
홋카이도 쪽의 체인점인 모양이고, 음식은 터치 패널로 주문할 수 있다.
가격에 비해 상당히 맛있었던 전어. 마침 제철이기도 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역시 안정적인 맛의 연어. 이 체인은 네타가 큼직큼직한 게 특징인 모양이다. 처음에 가격만 보면 다소 비싼 감이 드는데, 네타 크기를 보면 수긍이 간다.
아직은 기름기가 덜 올라오긴 했지만 먹을 만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부터가 고등어(참고등어)의 제철이고 날씨가 좀 더 추워지면 본격적으로 기름기가 올라서 횟감으로도 구이용으로도 정말 맛있는 고등어를 맛볼 수 있게 된다.
이거랑 유사한 어종으로 망치고등어가 있는데, 배쪽이 하얗지 않고 자글자글한 반점이 보이는 게 특징이다. 이쪽은 고등어(참고등어)보다 기름기가 적어서 맛은 덜하기 때문에 고등어가 제철인 겨울철에는 반드시 고등어(참고등어)를 찾아 먹는 게 좋다.
청어 역시 기름기가 좀 더 올라왔으면 하는 느낌이 있었지만 먹을 만했다. 이날 주문한 등푸른생선 중에서는 전어가 제일 컨디션이 좋았고, 그 다음이 고등어고 청어가 꼴찌인 느낌이었다.
나는 지금껏 살면서 고래 고기를 단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어서 어떤 맛인지 궁금해서 주문해 봤다. 고래 고기는 냄새가 많이 난다느니 뭐 그런 얘기들을 많이 들어서 맛이 없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살코기 부분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그렇게 크게 독특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누가 말해주지 않는다면 소고기의 우둔살인가 싶을 정도로 육고기에 가까운 식감에 특별히 비릿한 향도 그다지 느껴지지 않고 맛은 담백했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생각보다 평범해서 별 인상이 남지 않았다.
츠케마구로도 무난했다.
참다랑어 대뱃살을 시키자니 너무 비싸서 대안으로 선택한 눈다랑어 대뱃살. 역시 참다랑어와는 급 자체가 다르다 보니 대뱃살이라 해도 큰 감흥은 없었다. 육질로 미루어 보아 냉동된 걸 해동한 모양이기도 했고, 냉장 참다랑어의 츄토로보다도 못한 느낌이었다.
이날 붉은 육질의 생선 중에서 가장 컨디션이 좋았던 잿방어. 참다랑어는 그냥 붉은 살만 먹기도 했고 고래도 예상 외로 담백한 맛이었고, 눈다랑어 대뱃살도 기대치에 전혀 못 미쳤던 만큼 기름진 뭔가를 원했는데, 잿방어는 확실히 괜찮았다. 개인적으로는 잿방어도 조금 더 기름기가 올랐어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앞에서 먹었던 붉은 살들이 워낙 심심했던 터라 이 정도로도 만족스러웠다.
잿방어를 하나 더 주문해 볼까 하다가 아까는 절여진 아카미(赤身)를 먹었으니, 이번에는 그냥 생으로 먹어 볼까 싶어서 주문한 다랑어 3점 세트. 구성은 네기토로(자투리 살을 다진 것), 눈다랑어 아카미, 참다랑어 아카미다. 역시 앞에서 먹었던 잿방어에 비해서는 그닥 별 감흥이 없긴 했지만, 그래도 다랑어니까 마무리로는 괜찮지 않았나 싶다.
쿠시로까지 와서 잔기를 한 번도 안 먹어 봐서 여기서 주문해 봤다. 확실히 카라아게보다는 밑간이 더 강하다는 느낌은 들긴 하는데, 그냥 뭣 모르고 먹으면 맛있는 카라아게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다. 회전초밥 가게인데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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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초밥 마츠리야 신바시점 (回転寿し まつりや 新橋店)
맛 : ★★★★ (좋음)
CP : ★★★★ (좋음)
주소 : 北海道釧路市新橋大道り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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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 : Cost Performance
호텔에 도착했을 때가 17시 50분 무렵이었는데 이미 한밤중처럼 깜깜해졌다.
16시 30분도 안 되어서 저녁을 먹었기에 야식으로 먹을 만한 카츠카레를 역 앞 슈퍼마켓에서 사 왔다. 반값 할인으로 단돈 274엔, 환율을 고려하면 2,500원 가량이었다. 근데 숟가락을 가져오는 걸 잊어서 아이스크림 떠 먹을 때 쓰려고 가져온 숟가락으로 먹었다(...)
하겐다즈를 고르려다가 옆에 '쿠시로 아이스크림'이라고 되어 있길래 지역 식재료를 이용해서 만든 특산물이구나 싶어서 냉큼 골라왔다.
근데 한 입 떠서 먹으니 묘하게 술 냄새가 나서 다시 한 번더 뚜껑을 살펴보니, 술지게미를 사용해서 만든 아이스크림이라 알코올이 0.4% 포함되어 있었다. 어쩐지 뚜껑에 벼가 그려져 있다 싶었더니 그런 의미였던 셈이다. 그리고 쿠시로 아이스크림이라는 글자 위에도 잘 보면 「酒粕(술지게미)」라고 적혀 있었다.
본의 아니게 술이 든 아이스크림을 먹긴 했지만 맛은 있었다. 알코올 향만 조금 나고 맛에서는 거의 느낄 수 없어서 그냥 맛있는 우유 아이스크림이구나 싶은 정도.
이 동네는 금방 깜깜해지고 그만큼 가게들도 빨리 영업을 종료한다. 그래서 딱히 밖에 돌아다닐 일도 없고 해서 TV나 틀고 채널을 돌리는 중에 어디선가 많이 낯이 익은 인물들이 나오는 드라마를 방영한다 싶었는데, 이게 파티피플 공명의 실사 드라마였다.
파티피플 공명은 애니메이션이 처음 방영했을 때 오프닝을 듣고 이거는 진짜 대박이 분명하다 싶었다가 중후반부는 살짝 기대감에는 못 미쳤어도 잘 만든 작품이구나 싶긴 했는데 실사 드라마까지 전개된 줄은 여기서 TV를 틀기 전까지 몰랐다.
마지막 JR 패스 여행 (2023.10.03 ~ 2023.10.27)
1. 다시 한 번 더 전국 일주를 (2023.10.03 / 1일차)
2. 본토 최동단 네무로 (2023.10.04 / 2일차 - ①)
3. 네무로와 북방 영토 분쟁 (2023.10.04 / 2일차 -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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