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는 큐슈 일정이 이번 여행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3일밖에 있지 않았지만 워낙 일정을 빽빽하게 채워 넣고 벳푸 일정만 빼면 꽤 성공적으로 일정을 소화하기도 했고 해서 이야기할 것도 많으니 말이다.
호텔에 캐리어를 맡겨 두고 다시 쿠마모토역으로 향했다.
본래는 호텔에서 버스 터미널까지 도보 15분 정도면 갈 수 있지만, 워낙 빡빡한 일정에 다리가 거의 박살이 나 버려서 남은 무대 탐방 일정 등을 고려해서 발을 최대한 쉬게 하는 쪽으로 정했기 때문에 시영 전차를 타기로 했다.
다른 버스나 지방의 철도와 똑같은 시스템의 요금함이다. 정리권을 뽑고 요금표에 나온 요금에 맞게 요금을 준비한 뒤에 요금함에 넣고, 만약 동전이 없다면 동전 교환기로 미리 교환해 놓으면 된다.
내 기억에 아마도 여기서는 스이카를 사용 가능했던 것 같다. 일부 지역은 스이카 등이 호환되지 않고 그 지역만의 교통 카드를 써야 하는 경우도 있다 보니 사전에 알아두고 가는 게 좋다.
제법 큰 버스 터미널인데, 쿠마모토 공장으로 가는 무료 셔틀 버스는 2번 승강장에 정차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승강장을 찾을 수 있다.
내가 도착하기 전날에는 버스와 시영 전차가 하루종일 무료인 행사도 있었다.
산토리 공장 견학은 사전에 신청을 해 놔야 한다.
견학 신청은 아래 주소로 가능하다.
(https://www.suntory.co.jp/factory/kyushu-kumamoto/)
외국인이더라도 신청 가능하다.
여행 일정에 맞추어 날짜와 시간대를 지정하면 된다. 이후에 간단한 정보를 작성하게 되는데 모든 정보를 다 작성하고 나면 입력한 메일로 신청 접수가 완료됐다는 메일이 날아온다. 이후에는 시간대에 맞춰서 셔틀 버스가 오는 곳으로 가서 공장을 견학하면 된다.
내가 견학했던 때를 기준으로는 11:30 가이드 견학만 쿠마모토역 앞으로 셔틀 버스가 오고, 10:00과 13:45와 15:15 가이드 견학에는 사쿠라마치 버스 터미널로 셔틀 버스가 온다. 10:45, 12:15, 13:00, 14:30 가이드 견학에는 셔틀 버스를 운영하지 않으므로 이때 신청한다면 자차로 이동해야 한다.
예정 시각이 되어서도 버스가 안 와서 혹시 내가 잘못 온 건가 싶었지만, 다행히 이내 버스가 도착했다.
공장에 도착하면 사내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데스크에서 방문증을 준다. 가이드 견학 시간이 될 때까지 공장 주변을 돌아봐도 되고 건물 내부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어도 된다.
산토리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제품 중 하나인 천연수. 아소산의 깨끗한 물로 맛있는 맥주를 만든다는 산토리 쿠마모토 공장만의 철학이 담긴 문구다. 사실 산토리는 쿠마모토 공장만이 아니라 각 공장이 위치한 곳이 모두 유명한 수원(水源)지다. 좋은 음료를 만드는 데는 좋은 물이 필수라는 산토리의 고집이 느껴진다.
공장에 도착하자마자 데스크에서도 일본어로 진행하는 게 괜찮은지 물었지만, 가이드 시작 직전에 가이드 담당 직원이 다시 한 번 더 일본어 진행이 괜찮은지 각국 언어로 해설된 애플리케이션은 쓰지 않아도 되는지 물었고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가이드 견학이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어려운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브루어(양조사) 대신에 양조가(醸造家) 같은 단어가 쓰인다거나 약간의 단어 쓰임에 차이는 있지만, 일본어에 익숙하다면 다 알아들을 정도의 사소한 차이다.
가이드 내용에서 가장 중점적인 건 역시 '물'이었다. 우리나라도 화산 암반층에서 걸러져서 깨끗하다느니 뭐 그런 깨끗함을 중점적으로 생수를 홍보하듯이, 이쪽 역시 물이 오랜 시간에 걸쳐 땅에 스며들고 걸러지는 등 자연이 빚어낸 최고의 물을 얻기 위해 회사의 수익금을 다시 숲을 조성하는 데에 투자하고 있다고도 한다. 소비자에게는 더욱 깨끗하고 고품질의 제품을 제공하면서도 자연을 가꾸기까지 하니 이거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닐까.
아마도 이 여과기를 찍었던 게, 다른 산토리 공장들에서는 볼 수 없다는 얘기를 들어서였던 걸로 기억한다. 숙성 과정까지 모두 끝난 맥주가 여과기를 통과하면서 침전물과 효모가 걸러지고 포장 단계에 쓰일 최종적인 제품이 된다고 한다.
이 외에도 배합기, 숙성 탱크, 제품 포장 라인 등이 있지만 구경한다고 대부분 까맣게 잊고 찍지 않았다.
모든 견학 과정이 끝나면 마지막 시음 과정으로 넘어간다.
이때 미성년자나 자차를 가져온 그룹의 운전수는 술을 마시면 안 되기 때문에 주류 대신 산토리에서 생산하는 다른 소프트 드링크 제품을 제공한다.
시음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1. 간단한 영상 시청 (자사 광고)
2. 아로마 홉과 맥아의 향을 맡아 보고 직접 먹어보기
3. 더 프리미엄 몰츠 시음
4. 세 종류의 더 프리미엄 몰츠 제품 비교 시음
5. 가장 마음에 드는 제품을 한 번 더 시음
일단 홉은 먹을 수 없다고 적혀 있지만, 정확히는 굉장히 쓴맛과 강렬한 향이 올라오기 때문에 추천하지 않는 것이다. 정 궁금한 사람은 딱 한 알만 씹어서 먹어봐도 된다.
그에 반해 맥아는 향도 맡아보고 몇 알을 씹어서 먹어 볼 것을 권한다. 그냥 딱 생각한 대로 곡물의 고소한 향과 맛이 은은하게 느껴진다.
맥아 시식까지 진행했다면 그 다음에는 맥주를 시음하게 된다.
첫 잔은 산토리를 대표하는 프리미엄 맥주인 더 프리미엄 몰츠.
더 프리미엄 몰츠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본 맥주이기도 하다. 내가 처음 접했던 일본 맥주는 역시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았던 '아사히 수퍼드라이'였는데, 이게 미국식 부가물 맥주 방식으로 만들어진 거라 맛이 원체 가벼운 것도 있지만 아사히 수퍼드라이 특유의 끝맛이 굉장히 마음에 안 들었다. 약간 쇠 맛 같기도 한 자연스럽지 않은 듯한 신맛. 이 때문에 처음엔 일본 맥주에 대한 인상이 굉장히 안 좋았다. 차라리 버드와이저나 밀러는 같은 부가물 맥주지만 가볍기만 하고 구수한 맛이 있어서 그럭저럭 마실 만한데 말이다.
그러던 와중에 일본 여행 중에 우연히 접한 산토리의 더 프리미엄 몰츠 생맥주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한 모금을 딱 들이킨 순간 '일본에도 이렇게 맛있는 맥주가 있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맥주라 하면 개인적으로는 필스너를 최고로 치는 만큼 필스너 우르켈이 가장 좋아하는 맥주인데, 더 프리미엄 몰츠도 이에 못지 않은 굉장히 좋은 필스너라고 생각한다.
더 프리미엄 몰츠 얘기가 나오면 반드시 같이 나오는 게 에비스인데, 에비스는 더 프리미엄 몰츠에 비해서는 뭔가 좀 부드럽고 점잖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에비스도 굉장히 좋아하는 맥주이긴 하지만, 역시 좀 더 강렬한 향과 구수함이라는 면에서 더 프리미엄 몰츠를 조금 더 선호하지 않나 싶다.
더 프리미엄 몰츠의 세 가지 제품을 비교 시음하는 순서도 있다.
오리지널 더 프리미엄 몰츠는 항상 맛봤던 익숙한 그 맛. 카오루 에일은 확실히 향에 집중했다는 느낌이 든다. 마시기 전부터 과일에서 느껴지는 듯한 산뜻한 향이 감돌지만, 이게 또 맛은 마냥 가볍진 않다. 더 프리미엄 몰츠 제품군답게 기분 좋은 쓴맛이 뒤이어 온다.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역시 마스터즈 드림이었다.
운이 좋게도 2023년 3월 28일에 리뉴얼을 해서 다시 발매하게 된 제품인데, 이전에 발매했던 제품군은 뭔가 좀 별로였다는 반응들이 많아서 좀 우려를 했다. 그런데 그 우려를 싹 씻어낼 정도로 이번 제품은 상당히 좋았다고 느꼈다.
필스너라면 역시 강렬한 향과 쓴맛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이번 마스터즈 드림은 구수함이 묵직하게 확 치고 들어온다. 그러면서도 은은하게 퍼지는 단 향. 그래서 그런가 오히려 쓴맛은 오리지널보다도 덜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냥 처음 한 모금부터 '맛있다'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잘 만든 제품이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마실 맥주로는 당연하게 마스터즈 드림을 선택했다. 뒤이어 다른 사람들도 나를 따라서 마스터즈 드림을 골랐는데, 자세하게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분명하게 과반수 이상은 마스터즈 드림을 선택했다.
한 잔 가득 받아 놓고서도 아쉬워서 비교 시음용으로 받은 잔에 있는 것도 싹 비웠다. 오리지널이나 카오루 에일도 모두 마음에 들었지만, 이들은 한두 모금 정도 남김으로써 "마스터즈 드림이 최고였다."는 의사를 나름대로 전달한 셈.
여담으로 안주로 나온 저 과자도 시판 중인 제품인데, 역시 맥주 전용으로 나온 만큼 맥주와의 궁합이 상당히 좋았다. 공장 기념품 샵에서도 판매하고 있었는데 가뜩이나 캐리어 공간이 모자라서 아쉽지만 사진 않았다.
이번 일정에 방문한 쿠마모토 공장의 사진.
한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더 프리미엄 몰츠 제품은 교토 공장에서 생산된다.
수도권에서도 유명한 산지 지역인 데다 시골(...)이란 인상이 강해서 그런지 역시(...)
서쪽으로 제법 거리가 있긴 한데, 오쿠타마나 탄자와 쪽에서 천연수를 끌어다 쓴다는 모양이다.
카오루 에일은 단일 제품으로 2018~2020년 3년 연속으로 몽드 셀렉션에서 최고 금상을 수상했고, '더 프리미엄 몰츠' 브랜드로는 2005~2007년 3년 연속으로 최고 금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공신력이 있는 대회인가로 논란은 좀 있지만(...)
이건 갖고 돌아가도 된다.
공장 내부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던 발효 탱크. 저 안에서 맥즙이 점차 발효되면서 맥주의 형태로 변하게 된다.
평소 가장 좋아하는 주류가 맥주이기도 하고, 일본 맥주 중에서는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가 산토리인 만큼 한 번 쯤은 와 봐야지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이루게 돼서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아침부터 신나게 술을 마시고 오후 일정을 시작하기 위해 다시 돌아가는 무료 셔틀 버스에 탑승.
3년 만의 일본 여행 (2023.03.07 ~ 2023.03.24)
1. 삿포로/왓카나이 - 일본의 최북단으로 출발 (2023.03.07 / 1일차)
2. 왓카나이 - 북 방파제 돔과 소야곶 (2023.03.08 / 2일차 - ①)
3. 아사히카와 - 아사히카와 라멘 마을 (2023.03.08 / 2일차 - ②)
4. 삿포로/아사히카와 - 다시 달리기 위한 재충전 (2023.03.09 / 3일차)
5. 호쿠토/마츠모토 - 1,100km를 달리다 (2023.03.10 / 4일차 - ①)
6. 사이타마 - JR 동일본 철도 박물관 (2023.03.10 / 4일차 - ②)
7. 마츠모토 - 마츠모토성 (2023.03.11 / 5일차 - ①)
8. 시오지리 - 오랜 역사의 역참 나라이주쿠 (2023.03.11 / 5일차 - ②)
9. 나가노 - 젠코지(善光寺) (2023.03.11 / 5일차 - ③)
10. 카나자와 - 카나자와성 공원과 오미쵸 시장 (2023.03.12 / 6일차 - ①)
11. 카나자와 - 켄로쿠엔, 오야마 신사, 나가마치 (2023.03.12 / 6일차 - ②)
12. 요나고 - 침대 특급 선라이즈 이즈모 (2023.03.13 / 7일차 - ①)
13. 쿠라요시 - 우자키 쨩은 놀고 싶어! 무대 탐방① (2023.03.13 / 7일차 - ②)
14. 쿠라요시 - 원형 극장 피규어 뮤지엄 (2023.03.13 / 7일차 - ③)
15. 톳토리 - 톳토리 사구 (2023.03.14 / 8일차 - ①)
16. 톳토리 - 우자키 쨩은 놀고 싶어! 무대 탐방② (2023.03.14 / 8일차 - ②)
17. 오사카 - 오사카로 출발 (2023.03.14 / 8일차 - ③)
18. 나라/오사카/후쿠오카 - 나라 사슴 공원과 만제 돈카츠 (2023.03.15 / 9일차)
19. 아시키타 - 큐슈 신칸센과 히사츠 오렌지 철도 (2023.03.16 / 10일차 - ①)
20. 아시키타 - 방과 후 제방 일지 무대 탐방 (2023.03.16 / 10일차 - ②)
21. 카고시마 - 흑돼지와 시로쿠마 빙수 (2023.03.16 / 10일차 - ③)
22. 이토시마 - 드라이브 인 토리 이토시마점 (2023.03.17 / 11일차 - ①)
23. 벳푸 - 교자만 남은 벳푸 일정 (2023.03.17 / 11일차 - ②)
24. 나가사키 - 나가사키로 출발 (2023.03.18 / 12일차 - ①)
25. 나가사키 - 나가사키의 원폭 흔적과 소후쿠지 (2023.03.18 / 12일차 - ②)
26. 나가사키 - 나가사키 차이나 타운과 수변 공원 (2023.03.18 / 12일차 - ③)
27. 쿠마모토 - 산토리 쿠마모토 공장 견학 (2023.03.19 / 13일차 - ①)
28. 쿠마모토 - 쿠마모토성 (2023.03.19 / 13일차 - ②)
29. 쿠마모토 - 스이젠지 조주엔(水前寺成趣園) (2023.03.19 / 13일차 - ③)
30. 타카마츠, 코베 - JR 패스의 마지막 일정 (2023.03.20 / 14일차)
31. 도쿄 - 사신 쨩 드롭킥 무대 탐방 (2023.03.21 / 15일차 - ①)
32. 도쿄 - 봇치 더 락! 무대 탐방① (2023.03.21 / 15일차 - ②)
33. 요코하마 - 봇치 더 락! 무대 탐방② (2023.03.22 / 16일차 - ①)
34. 에노시마 - 봇치 더 락! 무대 탐방③ (2023.03.22 / 16일차 - ②)
35. 카마쿠라 - 청춘 돼지 시리즈 무대 탐방① (2023.03.22 / 16일차 - ③)
36. 후지사와 - 청춘 돼지 시리즈 무대 탐방② (2023.03.22 / 16일차 - ④)
37. 사가미하라 - 일본 최대의 자판기 레스토랑 (2023.03.22 / 16일차 - ⑤)
'◈ 여행 이야기 > [2023.03] 일본 전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3년 만의 일본 여행 - 스이젠지 조주엔(水前寺成趣園) (2023.03.19) (2) | 2023.05.19 |
---|---|
3년 만의 일본 여행 - 쿠마모토성 (2023.03.19) (0) | 2023.05.19 |
3년 만의 일본 여행 - 나가사키 차이나 타운과 수변 공원 (2023.03.18) (1) | 2023.05.15 |
3년 만의 일본 여행 - 나가사키의 원폭 흔적과 소후쿠지 (2023.03.18) (2) | 2023.05.10 |
3년 만의 일본 여행 - 나가사키로 출발 (2023.03.18) (1) | 2023.05.10 |